그 두번째 이야기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지난 호에서 소개한 스크립스 랜치에 있는 오리들의 천국 ‘오그리s 랜치’(Ogree’s Ranch)를 기억하시나요?
오리 엄마 임유진씨와 오리언니 아니카 가족이 팬데믹 부활절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웃에게 6개의 알을 받아 오리를 부화시켰던 이야기, 그 중 하나의 알에서 오그리가 태어났고, 외로운 오그리를 위해 동생 동그리를 데려와 때아닌 오리 형제를 키우기가 시작되었다는 스토리, Rim Family는 그로 인해 오리에게, 자연에게 사랑과 감사를 느끼게 되었고 가족간에도 화목함이 더욱 돈독해졌다는 해피한 이야기, 기억하시죠?
자, 궁금했던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갑자기 오리를 키우게 된 Rim Family 는 그동안 몰랐던 오리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오리들이 사람들이나 다른 동물들과 이렇게 교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 오리의 성정이 온순하며 머리가 좋아 주인을 잘 알아보기 때문에 반려동물로 많이 선택되고 있다는 것두요. 더불어 집에서 오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안전한 케이트가 필요하다는것. 늘 깨끗한 물이 필요하고 친구도 필요하다는것. 오리들은 정말 많이 먹고 똥을 자주 싼다는것, 그렇기 때문에 자주 자주 청소를 해 주는 것이 필수라는 것 등등.
오리들이 날로 성장해가자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 뒷 마당을 개조하기로 맘을 먹고 하나하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오리네 가족의 인터넷 검색어는 기기마다 ‘오리’, ‘Duck’, ‘Pet Ducks’, 오리 천지가 됐습니다. 은근히 주변에 오리를 펫으로 키우고 있는 집도 많았습니다.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상에 누군가 오리를 키우려고 해봤지만 너무나 힘이 들어 입양을 보내고 싶다는 글이 떳고 오리 엄마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오게 된 세번째 오리가 바로 호리호리한 금발의 아가씨 ‘비스킷’입니다.
오리가 세 마리가 된 덕분에 갑자기 더 분주해진 오리네 마당은 팬데믹의 우울함이 내려 앉을 새도 없이 아침 저녁으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휴~ 이뻐했다가 이놈~ 혼도 냈다가.. 이대로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누구의 시샘일까요, 너무나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맙니다.
그 일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손을 써 볼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오리네 가족의 뒷 마당은 Country Living, Scripps Ranch 답게 서쪽으로 넓게 펼쳐진 캐년과 맞닿아 있어서 해지는 석양 무렵에는 그 경치가 황홀하기 그지 없습니다. 여태껏 캐년에 접해 있는 뒷 마당은 이렇듯 이 집의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동물들도 많이 있으니 이제는 마당에서 훨씬 시간을 많이 보내는 오리들을 위해 게이트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들은 상의 끝에 게이트를 짓기로 하고 그 이튿날 공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날도 오그리와 동그리, 비스킷은 경계심 하나 없이 마당을 가로 질러 다니며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악한 녀석은 얼마 동안이나 이 귀여운 오리들을 지켜보며 타이밍을 노렸을까요.
갑자기 캐년을 가로질러 밥캣 한마리가 뛰어 들어 하얗고 보드라운 오그리의 목을 홱 낚아 챈 모양이예요, 푸드덕, 푸덕 푸덕 분명히 무슨 일이 난듯한 어수선한 소리에 오리 엄마가 황급히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아악!어떻게~!!” 하고 소리 소리 지릅니다. 아랑곳하지 않는 밥캣은 오그리를 물고 빛의 속도로 캐년 깊숙한 곳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저런!
아, 오리 엄마 어떡하나요, 발을 동동구르며 미친듯이 캐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가 다시 집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가 어쩔 줄을 모릅니다. 가슴이 벌렁 거리고 손발이 벌벌 떨리는 동시에 저절로 눈물이 쏟아집니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 상상이었을까요, 진짜로 본 것일까요. 엄마를 향해 구조를 요청하는 오그리의 까맣고 슬픈 눈을 본 것 같아서 더욱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오리 엄마와 가족들은 남은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왜! 하필! 그 시간에 오리들을 마당에 풀어 두었을까, 왜 미리 주변을 살펴보지 못했을까, 아니, 공사를 하루 앞둔 날 이런 일이, 왜 그 전에 하지 않았을까?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후회를 해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다고 오그리가 돌아오지는 못할테니까요. 울다가 급기야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심술궂은 생각까지 해봅니다. 차라리 동그리였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텐데..아니야 아니야, 동그리야 미안해~흑. 잘 모르고 전해 듣는 사람은 어쩌면 유난하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그리는 그만큼 특별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Rim Family에게 찾아 온 오리 알, 28일간의 보살핌 속에서 기적같이 알을 깨고 태어난 오그리, 부화된 동시에 만난 아니카 가족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따르며 온갖 재롱을 피우고, 동생 동그리가 오자 진짜 동생이라도 생긴듯 챙겨주고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집안 전체를 생기넘치게 만들어 준 오그리. 언제부턴가 각자 제 할일에 집중하며 덤덤했던 가족들을 하나의 관심사와 목적으로 뭉치게 했던 오리였습니다.
몇날 며칠이 지나도 오그리가 사무치게 그리웠고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침통한 이 사태를 아는 양, 동그리와 비스킷은 까불지도 않고 며칠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습니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던 오리 엄마는 두 동생 오리들이 우울해 하는 모습을 보고 오그리가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털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리 엄마는 집중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뒷 마당 한 켠을 오리들이 들어가 잠을 자는 방, 수영을 하며 놀 수 있는 오리 전용 수영장, 그리고 먹이와 물을 먹을 수 있는 지정 공간을 만들고 철망을 두른 뒤, 문도 만들어 달면서 튼튼하고 넓은 케이지 형식의 집을 만들었습니다. 이만하면 밥캣같은 녀석은 다시는 접근할 수 없을 것이야, 천하에 나쁜 밥캣 같으니라고. 쉬지도 않고 일하며 오리들의 공간을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Ogree’s Ranch’라는 현판도 직접 제작해 걸었습니다. 오그리야, 너를 언제까지나 기억할게~ 여기는 너의, 오그리의 랜치야.
그리고 비스킷이 낳아 놓은 오리알들을 부화시키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 중에 혹시 오그리의 아이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요. 다시 예쁜 오리 세마리가 태어났고 각각 레이, 레아, 유난히 하얗고 이쁜 아이는 오그리 주니어 라고 이름지어 주었습니다. 후에 태어난 몇 마리는 오리와 가축을 가족같이 키우는 친구에게 입양을 보냈습니다.
아.. 그런데 이번엔 비스킷, 너무나 애교많고 유난히 사람을 따랐던 비스킷은 수영장에서 놀던 중에 숫컷 오리들의 무례한 짝짓기 행동에 그만 익사를 당하고 맙니다. 비스킷의 익사 사고로 인해 또 한번의 슬픔을 겪었지만 이제는 반려 동물을 떠나 보내는 것도 조금씩은 연습이 되었나 봅니다. 반려 동물들을 키우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단련이 되기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그리’s 랜치에는 현재 동그리와 레이, 오그리 주니어, 그리고 다시 입양한 솜이와 아롱이 이렇게 다섯 마리의 오리가 평화롭게 뛰어 놀고 있답니다.
최근에 새로 집으로 오게된강아지 코비와도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행복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자아~ 여기까지가 ‘어쩌다 오리 엄마’가 됐다는 임유진 씨네 오그리’s 랜치 이야기 입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오리를 키우다니, 오리가 과연 주인을 알아나 볼까? 오리가 반려동물이 될 수 있나? 오리 때문에 페스코 채식 주의자가 됐다고? 오리가족의 사연을 듣고 보니 이제 조금금 이해가 됩니다.
오리를 키우면서 스스로 엄청 부지런해졌다는 오리 엄마는 하루 두번씩 한다는 오후 청소를 마치면 오그리’s 랜치를 마주보는 데크에 앉아서 사랑스러웠던 원조 오그리를 추억하며 살짝 눈물을 짓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게 왠 행복인가!” 혼잣말 하는 오리 엄마가 앉은 행잉체어에 어느덧 아름다운 석양이 물들어 갑니다.
글:서정원 / 사진: 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