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엘림 북 클럽 2월의 도서로 선정된 김 기홍님의 ⎾시골 소년, 꿈을 이루다⏌를 읽고 쓰는 서한문 입니다.
어른이 꿈을 이야기 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의 꿈은 자칫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는 꿈은 힘을 얻지만 돈으로 쉽게 바꿀 수 없는 꿈은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꿈을 말 해주는 어른의 이야기가 무척 그리웠습니다. 꿈이 있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엄청난 일인데 스스로 꾼 그 꿈을 ‘이루다’ 라는 제목 부터가 제게는 몹시 설레는 시작이었습니다.
자서전 속에서 한 겨울에도 신발 없이 큰 댁에서 나뭇짐 지며 다니던 충북 괴산의 외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사촌들만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날 ‘새 신 사줄까 학교 갈래’하는 큰아버지 물음에 꽁꽁 얼어붙은 발을 하고도 학교 갈래요 하셨다던 할아버지 이야기가 존경스러우면서도 당시에는 거짓말 같았습니다. 한국 겨울이 얼마나 추운데 언 땅 위를 어떻게 신발 없이 다닐 수 있을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여쭤볼 길이 없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는 자서전 속의 일화는 제 할아버지께서 살아 돌아 오신 것 처럼 너무 놀라운 이야기 였습니다.
저는 또 글 속에서 인민군 징집을 피해 재기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했던 고등학교 2학년때의 큰삼촌도 만났고, 6.25. 전에 참전 하셨다던 둘째 큰아버지도 만났습니다. 마지막 부록에 실린 노트 필기 사진을 통해서는 함께 가난한 유학생 생활을 버텼던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동생 코코의 공책도 생각났습니다. 남자들 모두 피난 간 외갓집에서 전쟁 중 공부와 생계를 병행하다 늑막염에 걸리셨다는 25년 전 돌아가신 큰 이모도 만났습니다. 동시에 ‘나는 지금 자서전의 어느 페이지쯤 을 지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도 물어보니 놀랍게도 정확히 187쪽에서 봄 방학 중 재충전을 하고 있지만 피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지금의 지친 제 모습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일하던 것도 쉬고, 겨울 학기가 끝나 봄 학기 시작까지 약 1주간 방학이 있어 잘 쉬었다. 그동안 약을 거르지 않고 시간 맞춰 먹자, 기침도 잦아들고 가슴 통증도 가라 앉으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다.’ (p187) (지금은 학생에서 교사가 되었지만 잘 못 먹고 못 쉬어 얻게 되는 기관지 염증은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고질병이 되어버렸습니다).
벌써 70년 전 유학생의 일기 이지만 이 문장이 지금을 살아가는 저의 이야기 이기도 해서 놀라우면서도 반가웠고 이 고생이 되풀이 되는 것이 슬펐으며 누군가는 지금도 이렇게 열심히 앞만 보며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함께 힘을 내자’ 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제가 자서전만 읽고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김기홍 박사님, 교수님, 장로님 여러 타이틀이 있으셔서 제가 어떻게 호칭을 해야 할까 고민도 했지만 사실 박사님, 교수님, 장로님께는 감히 드릴 말씀이 없었는데 청년 김기홍 페이지에 이르니 드리고 싶은 말이 생각이 나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글은 20대중반의 김기홍 청년에게 40대 욜란다가 쓰고 있는 글 인 것입니다.
기홍 청년, 저도 비슷한 나이에 스스로 꿈을 꾸고 미국 유학을 준비해서 장기 유학생을 거쳐 가족을 초청한 경험이 있는 유학생 동기입니다. 일하고 과제를 마치고 시험 보고 또 다음날이 다가오고,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 소원인 시간도 아마 있으셨겠 지요. 저녁에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으면 오늘은 몇시간을 잘 수 있는지 일단 계산부터 하고 보는 습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명 앉아 있는데 숨이 차는 느낌을 그 때 경험 했습니다.
지금 $325과 55년도의 화폐가치를 환산하기도 먼 나라 이야기 이지만 아직도 그 숫자가 어떤 이에게는 아주 큰 돈 일 텐데, 다음학기 등록금 걱정에 까만 밤을 세었을 형제님의 숱한 밤을 읽으며 함께 안타까웠습니다. 다 대비를 해 놓으셨겠지만 등록금과 식비는 그렇다 치고 책값은 어떻게 하셨을 지, 화학 전공서적이면 정말 비쌌을 텐데 등록금과 버금가는 책값에 등골이 휘던 제 기억도 났습니다. 미국은 졸업 준비 위원회 라는 것이 따로 없고 학사모며 테슬 하다못해 졸업장 케이스 , 사진 모두 개인이 구입을 해야 하던데 학교마다 틀려서 제가 잘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비용은 어떻게 하셨는지 글을 읽으며 나중에는 그것도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209쪽, 바퀴벌레와의 전쟁 편에서는 제가 밤 새워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가 새벽녘에 집에서 싸온 김밥 도시락을 먹기 위해 도서관 로비 계단에 앉아 뚜껑을 여는 순간 샌디에고의 수천 마리 바퀴벌레들이 온통 제 도시락을 향해 원형 대형을 이루어 달려 드는 바람에 혼자 공포 영화를 찍었던 장면도 떠 올릴 수 있었습니다. 자서전을 읽으며 내내 기홍 청년의 이야기가 세대를 달리하지만20대, 30대 욜란다 에게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Washington Irving의 The Sketch Book of Geoffrey Crayon, Gent. (p48; 새로 부임하신 영어 선생님께서 선택하신 교재)속 Rib Van Winkle 이 하룻밤 자고 났더니 20년이 흘렀더라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2024년 3월 14일로부터 20년 전은 제가 미국에 유학생으로 샌디에고에 온 지 20년이 되는 날 입니다. Rib Van Winkle은 나이 지긋한 노인이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지난 20년 역사를 이야기 해 주었고, 저는 중년이 되어 하룻밤 같이 짧은 제 미국 생활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홍 청년의 이야기는 과거에 이랬더라 하는 지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누군가에게는 열심을 다 해 살아가는 오늘의 이야기 여서 더욱 몰입하며 읽었습니다. 줄을 몇 번씩 긋고 나중에는 색을 다르게 칠하며 읽었습니다. 어떤 분이 읽고 싶으시다고 연락 주시면 빌려 드려야 하는데 좀 빌려 드리기가 민망하게 접히고 메모가 되어있고 질문들이 어지럽히 적혀 있습니다.
2독 3독을 할 때는 가족들도 함께 자서전을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억을 많이 잃으셨지만 충북 괴산이 외가이고 종로가 본적인 어머니는 제가 밑줄 그은 부분을 속독 하시며 제 질문에 답도 해 주셨습니다.
“엄마, 이 분은 충남 당진이 고향이시래. 경순 왕 후손이시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박사라고 하셨어.”
“충청도는 다 양반 이야.”
“엄마, 이 분 아버지는 중동 나오셨데.”
“어! 중동 좋아.”
“어머니는 진명여중에서 공부하시고.”
“알아주지 옛날부터.”
“엄마, 정릉에 경신중학교라고 있어?”
“있지. (눈을 위로 치켜 뜨시고 뭔가 기억 하시려는 듯이 ), 응 거긴 똑똑한 사람들만 갈 수 있어.”
아버지는 귀가 안 들리시니 어머니와 한 문장 읽고 질문하면 답하시고 한 문장 읽으면 답하는 재미있는 문답도 했습니다.
어지럽게 밑줄 그으며 저는 글 안에서 기홍 형제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만 했던 순간을 함께 읽었습니다. 중학교 진학을 하는 부분, 산에서 인민군을 만나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소위 우리가 말하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과감히 가지 않을 선택을 했던 장면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해병대 장교로 임관하지 않은 일화가 그렇습니다.
‘결정은 자신의 뜻을 위해 가지 않을 선택을 했던것.’을 포함합니다.
제가 좋하하는 ‘넘버스’ 라는 웹툰의 주인공 대사 중 한 부분입니다. 결정이 뭔가 좋은 기회를 선택하는 결정이 있다면 자신의 뜻을 위해 좋은 것을 택하지 않을 선택도 너무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은 찰나의 어느 순간에 내리는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평생의 시간을 기반으로 내려진다. 그래서 누군가의 결정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말해준다.’ 자서전에서 언급하신 기홍 형제의 숱한 ‘택하지 않은 용기’ 꿈을 위해 뜻을 위해 내린 결정을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마치 제 외할아버지의 한겨울 새 운동화처럼 말입니다. 지금은 물론 제가 책을 다 읽어서 진행중인 해피 엔딩을 모두 알고 있지만 결말을 몰랐 더라도 형제님의 꿈이 바뀌셨더라도 저는 분명 응원을 했을 것 입니다. 이것은 20년 동안 미국에 살며 제가 새롭게 배운 소중한 가치 중 하나 입니다.
형제님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도움을 주신 천사같은 감사한 분들은 책을 덮은 지금도, 읽는 내내 제 마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기관지 염이 다 낫고 열이 금방 내리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특히 성취의 순간, 아! 너무 애썼다. 잘 했다 축하 해 주는 가족이 곁에 없었을 때 기홍 형제의 외로움도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냥 20대 기홍형제에게 너무 대단하다. 참 장하다. 어떻게 그렇게 했니. 고생했다. 정말 자랑스럽다. 그런 말을 해 주고 어깨도 두드려 주고 맛있는 한국 음식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마치 어린시절 사랑으로 돌봐 주시던 사촌 누나 처럼요 (p28). 사촌 누님께서 이 책을 보셨다면 ‘아이고, 누가 우리 기홍이 군복을 훔쳐 갔누? 나쁜 사람. 인민군 포로 입성이 더 좋아 보이니 어떡하나. 하셨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손자 손녀들에게’라는 책 날개의 메시지가 있었지만 자서전은 마치 저를 위한 메세지 처럼 들렸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저도 제 꿈 의 역사를 채워 나갈 예정입니다. (저도 ‘욜란다 꿈을 이루다’ 로 자서전을 써야지 하는 결심을 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시골 소년, 꿈을 이루다⏌가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지금은 플로리다에서 이화영 拜上.
글쓴이: 이화영. 필명 욜란다. 엘림 북 클럽 Facilitator.
시골 소년, 꿈을 이루다⏌를 읽고 싶으신 분은 hwayoung0225@gmail.com으로 주소와 함께 메일을 주시면 미디어 메일로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