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 만나는 방 - 1월
- sdkoreanmagazine
- Feb 27, 2024
- 3 min read
Updated: Mar 28, 2024
아이의 꿈과 삶이 담긴 어린이 책을 읽노라면, 내 안에 아직 살고 있는 어린 나를 만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두 달에 한 번씩 이 방에서, 혼자 읽어도 좋고 아이와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어린이책을 만나 보세요.
저는 어렸을 때 별명이 ‘이야기 귀신’이었어요.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붙은별명이었지요. 특히 책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해서 ‘책벌레’라고도 불렸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전 여전히 이야기를 사랑해요. 이야기를 읽으며 보물 찾아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전쟁의 참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지에 대한 영감을 얻어요. 지난 두어 달 동안 책으로 만난 이야기 중에서 어린이들,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잠 이야기

키티 크라우더 Kitty Crowther는 한국에서 매우 인기 있는 벨기에 출신 그림책 작가지만,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요. 번역 출간된 그림책도 많지 않고요.
선청성 난청이 있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볼 수 있었다는 작가. <Stories of the Night>를 보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요. 그 어떤 잠자리 그림책이랑도 닮지 않았거든요. 엉뚱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 그림책을 부모님이랑 함께 읽고 잠이 든 아이는 틀림없이 환상적인 꿈을 꿀 거예요. 저처럼요. 이 그림책의 메인 컬러인 분홍색이 몽환적인 느낌을 더합니다. (3-6세)
상처투성이 영혼끼리 만나면

그림책 작가 존 클라센 Jon Klassen은 알라스카의 한 도서관에 강연하러 갔다가 우연히 서가에서 옛이야기 하나를 읽었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 <The Skull>. 옛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을 교과서로 삼으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현대적이고 독창적입니다.
주인공 아이가 왜 추운 겨울에 숲을 헤맸는지, 왜 성에 해골 혼자 살고 있는지, 해골을 죽이려는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 작가는 끝내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왠지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포만감이 밀려듭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4-9세)
책벌레에게 선물 같은 이야기

오래 전에 불타버린 도서관. 도서관에서 죽은 사람으로 보이는 유령. 화재에서 살아남은 책들에 집착하는 늙은 고양이. 그 책들 속에서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만나는 아이. 이들의 이야기가 "도서관은 왜 불에 탔을까?"라는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유려하게 펼쳐집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까지요.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저처럼 책을 좋아하고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선물입니다. (8-12세)
현실의 전쟁도 이렇게 끝낼 수 있다면...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이야기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군인 둘과 (자폐증을 갖고 있는 듯 보이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 사는 심술궂고 이기적인 열세 살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은 서안 지구를 배회하는 고양이 한 마리입니다. 소녀가 죽어 환생한 고양이거든요. 적어도 고양이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이스라엘 군인들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 사이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인간으로 살 때 영어 선생님과 겪었던 갈등을 회상하고 가자 거리의 긴장감이 최절정에 다다른 순간, 그 중심으로 뛰어듭니다. 영어 선생님이 자기에게 손을 흔들던 순간을 떠올리면서요. 기묘하면서도 감동적인 장면이랍니다.
어쩌면 소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혼수상태인 몸에서 잠시 빠져나온 영혼이 고양이의 몸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총격전을 고양이의 몸으로 막은 뒤 영혼은 소녀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소녀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았을까요? 깨어난 소녀는 예전과는 다르게 살겠지요.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습니다. 그런데 작가에게 묻고 싶어요. “왜 미국 소녀의 영혼이 팔레스타인의 길고양이 몸으로 들어갔나요?” (9-12세)
나의 삶은 내가 쓰는 이야기

팔레스타인의 옛이야기를 발굴해서 썼다는 프롤로그를 읽고 호기심이 생겨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프롤로그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요. 이야기 속 이야기처럼 거짓일 수도 있거든요.) 주인공이 세헤라자데처럼 용감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여성이라는 걸 알았을 때에는 가슴이 뛰었어요. 세헤라자데처럼 이야기 귀신한테 매력적인 존재는 없으니까요.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천일야화’처럼 화려하고 다채롭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사회가 규정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길을 떠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 과정들이 흥미진진합니다. 자기가 읽었던 이야기들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무기가 된다는 설정은 의미심장하고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작품입니다. (15세 이상)
사실 우리 모두 이야기 속 주인공입니다. 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내미는 손 끝에, 내딛는 발걸음에 작은 파장이 일어나고 그 파장은 크고 작은 이야기를 만드니까요. 우리는 때론 가슴 무너져내리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고, 때론 희열에 차 하늘로 날아오르는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타인을 아프게 하는 악당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는 진정한 주인공으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 속 주인공이셨나요?
윤여림 (아이들과 이야기를 키우며 지내는 어린이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