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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나는 방 - 3월

아이의 꿈과 삶이 담긴 어린이 책을 읽노라면, 내 안에 아직 살고 있는 어린 나를 만나게 됩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두 달에 한 번씩 이 방에서, 혼자 읽어도 좋고 아이와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어린이책을 만나 보세요.



 


작년 10월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시어머님과 친정 부모님, 여러 어른들을 보면서 여든이 넘으면 급격히 쇠약해진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안타까웠지요. 동시에 어른들의 현재가 곧 나의 미래라는 사실에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어떻게 나이 들어갈지에 대한 두려움이었어요. 세상은 백 세 시대로 가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노년의 시간을 보내게 될까요? 자녀에게 어떤 노인으로 비칠까요? 문득 어린이 책에는 노인 세대와 어린 세대의 교감이 어떻게 담겼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만나는 게 최고

미국에 이민온 뒤 알았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손 쉽게 이메일로 편지를 나눌 수 있고, 무료로 언제든지 통화를 할 수 있고,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볼 수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직접 만나는 게 최고라는 걸요. Pat Miller와 Suzy Lee의 <See You Someday Soon>은 바로 이런 진리를 예쁘게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요즘 시대에 Taro Gomi의 고전 그림책 <I Really Want To See You, Grandma>는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집 전화와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거든요. 그림책 속 유미의 할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오래오래 사세요. 나무 아래에서 유미와 만나는 기쁨을 오래오래 누리세요.” (3-6세)



누가 누구랑 놀아 주는 걸까?

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최고의 베이비시터는 친정 아버지였어요. 아이들과참 잘 놀아 주셨거든요. 하지만 이 두 그림책을 읽고 나니 그 시절 아이들은 자기들이 할아버지와 놀아 주고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할아버지랑 놀면서 하던 말들이 떠올라요. "할아버지, 우리 레고 블록으로 로봇 만들어요.”, "할아버지, 전 공룡이에요. 크아아아앙!", "할아버지, 이거 맛있어요. 하나 줄까요?" 아이들이 놀자고 매달릴 때마다 함박웃음 지으시던 친정 아버지.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2-6세)




우리의 인생은 정원과 같아서

할머니가 자신만의 철학으로 가꾼 아름다운 정원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아이는 행운아겠지요? <My Nana’s Garden>에는 그런 운 좋은 아이가 나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 옆에는 할머니가 된 자신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세 사람은 할머니가 남긴 정원에서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지요. 모든 사람이 이 세 사람처럼 운이 좋을 수는 없지만, 이 그림책을 만난 독자 또한 행운아입니다. 간접적으로나마 세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맛볼 수 있거든요. 그만큼 아름다운 그림책이랍니다.

Lane Smith의 그림책 <Grandpa Green>을 보고 나서는 어쩌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정원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가 평생 가꾼 정원. 증손주는 정원을 누비며 할아버지의 지난 날을 만나지요. 정원은 증손자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듯, 자기의 뿌리인 할아버지의 인생을 몸으로 느낀 아이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겠지요? (3-7세)




영원히 살아 계시게 하는 방법

음력 설을 맞아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 차례를 모시고 나서 여느 때처럼 남편이 우리에게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John Burningham의 <Granpa> 속 할아버지와 달리 제 시아버님은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병석에 누워 계셨기에 이런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합니다. 덕분에 아이들 기억 속에서 할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살아계실 테니까요. 어린 시절 명절마다 아빠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덕분에 얼굴을 본 적 없는 할아버지가 제 기억 속에서 늘 살아 계시는 것처럼요.

<I remember Abuelito - A day of the Dead Story>의 소녀는 ‘죽은 자들을 위한 날’에 때맞춰 날아드는 제왕나비를 할아버지의 영혼이라고 믿으며 좋아합니다. 자연에서 돌아가신 부모, 조부모를 느끼고 추억하는 건 최고의 추모. 소녀의 할아버지는 여한 없이 죽은 자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낼 거예요. (2-6세, 4-8세)



요양원 노인과 어린이의 우정

의학의 발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80대, 90대까지 살고 있습니다. 장수는 건강하게 늙어갈 수 있다면 축복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되고 맙니다.

Ulf Stark는 요양원의 노인을 주인공으로 두 작품을 펴냈습니다. <The Run-Aways>에서는 아들과 요양원 직원들에게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한 노인과 그의 진정한 모습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손자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들려줍니다. 마지막까지 작가는 유쾌함을 잃지 않지만 손자 덕분에 성숙하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노인의 모습에 가슴이 촉촉해집니다.

<Can You Whistle, Johanna?>은 <The Run-Aways>만큼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요양원에 사는 노인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담긴 작품입니다. 조부모가 없는 어린이와 가족이 없는 노인을 연결해 보세요. 어르신은 아이에게 자신의 자산인 추억과 기술(휘파람 불기, 연날리기와 같은)을 주고 아이는 어르신에게 재미와 에너지를 줄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둘 사이에 생기는 가족애는 보너스겠지요? (5-11세)



 

미래에 나는 아이들에게 (손주가 생긴다면 손주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어떤 유산을 물려 줄 수 있을까요? 좋은 기억, 귀한 유산을 남기는 노인으로 건강하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윤여림 (아이들과 이야기를 키우며 지내는 어린이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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